본문 바로가기
문화 Story/Movie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우주적 농담, 그 속의 인간적인 무언가

by La-KanTo 2025. 2. 20.

"42. 정답입니다."

어떤 질문인지 묻지 마라. 중요한 건, 정답이라는 사실 그 자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AI가 글을 쓰고, 테슬라가 우주로 자동차를 날리는 시대가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우리가 있다. 하지만 정작 1979년에 출간된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그 모든 예측 불가능한 혼란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만 같다. 2005년에 만들어진 영화는 그 혼돈의 일부를 정리하려는 시도였고, 그 결과물은 여전히 기괴하고, 유쾌하며, 무엇보다 ‘영국적’이다.

 

"이 영화는 SF인가? 코미디인가?"

이 영화를 SF로 정의하기엔 너무 어이없고, 코미디로 정의하기엔 너무 똑똑하다.

우리가 아는 SF 영화들이 웅장한 음악과 함께 신비로운 미래를 보여준다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그 모든 것을 깨부수고 우주를 회사 복사기 앞에서 한숨 쉬는 직장인처럼 바라본다. 블랙홀, 광속, 웜홀 같은 어려운 개념들은 모두 제쳐두고, 이 영화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은 이것이다.

"우주의 끝에서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마실 수 있을까?"

SF의 전통적인 거대 서사를 따라가지 않는 대신, 영화는 엉뚱한 상황과 어처구니없는 유머를 통해 현대인들이 갖는 삶의 부조리를 폭로한다. 인공지능이 인류를 정복하는 대신 우울증에 빠져 있고, 지구의 멸망 이유는 단순한 ‘우주 고속도로 건설’ 때문이며, 신은 자신이 만든 우주를 후회하는 편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를 어디로 안내하는가?

 

"Meaning of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

영화는 초반부터 지구가 ‘우주적 개발 계획’에 의해 무참히 사라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순간, 우리의 주인공 아서 덴트(마틴 프리먼)는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리고, 낯선 우주의 부조리 속으로 내던져진다. 우리는 그의 여행을 따라가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우주는 거대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사소한 것이다.

거대한 질문 속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답이 아니라, 우리가 찾으려 했던 과정 자체라는 사실.

 

"인류는 언제나 히치하이커였다"

영화는 히치하이킹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히치하이킹이란 원래 목적지가 없는 여정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또한 어떤 정해진 목적지가 있는 게 아니라, 가끔은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고, 낯선 곳에 내려지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인연을 만나며 흘러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의외로 간단하다.

"당황하지 말 것(Don’t Panic)"

인생이란 것은 어차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제까지 당연했던 것이 오늘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홍차 한 잔의 따뜻함을 발견할 수도 있다.

결국, 삶이란 히치하이킹과 같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 여행을 함께할 사람들과의 대화가 아닐까?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반적인 SF 팬들에게 이 영화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스타워즈'의 전투도 없고, '인터스텔라'의 물리학적 감동도 없으며, '마블'의 화려한 액션도 없다. 대신에 이 영화는 우주적 차원에서 가장 사소한 농담들을 던진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지친 일상 속에서 **삶이란 대체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면, 이 영화는 예상치 못한 위로를 줄지도 모른다. 어차피 우주는 무의미하다.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 없다.

"42."

정답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그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바로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Don’t Panic. Just enjoy the ride.

 

 

댓글